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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WN MUSICIANS of BREMEN
이도경 개인전

‌2022. 3. 1 TUE  - 2022. 4. 10 SUN


‌브레멘 음악대를 위한 서문 
신채희
 
곱슬털, 사람머리가 아닌 사람들의 초상, 허연 눈의 박제된 동물머리, 확인사살, 어둡고 밝은 낮과 밤. 
 
윗줄에 나열된 몇 가지 것들은 저에게 있어 이제서야 편히 말할 수 있게 된 것들입니다. 예전에는 쳐다보기도 어려웠다는 뜻이지요. 몇달, 혹은 몇 년이 걸리기도 했지만 역시 어떤 상황이든 평생일 것은 없네요. 하지만 마음의 준비를 하더라도, 막상 닥치면 내일 따위는 없이 한밤중은 끝나지 않을 것처럼 마냥 어렵기만 한 것. 그거야말로 지금 우리들 상황 아니겠어요.
 
각설. 이왕 편해졌다고 운을 띄었으니 더 이야기해보겠습니다.
 
아끼는 액자와 소중한 그림이 있습니다. 그런 액자의 프레임에 오래도록 쌓여온 두터운 먼지를 털어내고 털어내다 결국 먼지와 함께 살기로 마음먹은 날부터, 밉기만 하던 먼지는 프레임과 하나가 되어 그림을 지켜주는 존재가 되었습니다. 여러 곳을 떠돌다 온 먼지가루들은 금세 액자를 떠나기도, 외려 눌러 앉기도 합니다. 그렇게 오랜 시간이 지난 후 지금, 액자를 바라봤어요. 여전히 새것처럼 반짝거리는 부분도, 낡고 녹슬었지만 그 나름의 멋이 있는 부분도 있네요. 혈안이 되어 먼지를 없애고자 했던 때가 먼 옛날 남의 일처럼 느껴집니다.
 
제가 전하고자 하는 건, 비단 액자에 쌓인 먼지만의 이야기가 아니랍니다. 세상 모든 여러분 또한 털어내고 싶은 흉, 약점, 생채기가 있을 거예요. 내가 그때 왜 그랬나 후회도 될 거고, 걔는 그때 왜 그랬나 원망도 할 거고, 치부를 들킬까 전전긍긍하는 여생을 두려워할지도 몰라요.
 
하지만 기억해주세요.
 
숨겨왔던 곱슬털을 처음 드러낸 날처럼, 초상 속 친구를 떠나보내고 새로운 초상을 그려낸 날처럼, 그리고 어두운 낮을 너머 밝은 밤을 맞이한 날처럼,

모든 것은 지나갈 것이란 걸요.